
예전부터 만년필의 사각거림을 사랑했던 나는 ‘Ciak’ 부터 미도리의 ‘Traveler’s Note’ 까지 다양한 노트를 사용해왔다. 그리고 이번에 손에 넣게 된 노트. ‘About Blank’. 노트의 이름처럼 About Blank는 아무런 장식이나 기교가 들어가지 않은 ‘노트’ 그 자체이다. 이 노트는 피렌체 향이 가득한 시아크의 화려함, 브랜드와 역사가 가득한 몰스킨의 진중함, 집시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트래블러스 노트의 범용성과는 또 다른 ‘담백함’을 가지고 있다. About blank라는 표지마저 떼어낼 정도로 디자이너는 노트에 자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에 대한 철학과 대담함을 양껏 드러내고 있다. 마치 도전받는 기분이다. ‘나는 노트다. 당신은 나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bout Blank는 스미요시 나가야다. 안도 다다오는 스미요시 나가야라는 작은 주거공간 속에 중정을 만들었고 거주의 공간감과 개방감을 표현했다. 자칫 건조해질 수 있는 소재인 콘크리트를 통해 주거 본연의 기능을 재구성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노트는 장식과 기교를 철저하게 배제하였다. 그리고 다른 노트와 달리 속지의 한면은 희미한 구분선을, 다른 한면은 백지상태로 두어 노트를 작성하는 사용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중정’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노트의 겉표지를 가죽이 아닌 종이로 만들어 기존 노트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죽 소재와 달리 ‘재활용’을 용이하게 하였다. 섬세한 디테일이 만들어내는 개방감과 배려다.

첫 문장을 적어본다. 그리고 또 다른 문장을 적어본다. 손에 익은 만년필이 종이를 타고 흐른다. 두툼한 중성지가 견고하게 글씨를 받쳐주고 잉크는 종이속에 봉인되어 글자를 구성한다.
노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나와 문장만 존재할 뿐.